Back to Journal

저널

UBTech UWorld U1, 고독의 언어와 거절하지 않는 몸

반려라는 말로 포장된 욕망

섹스봇은 처음부터 섹스봇이라는 이름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반려, 돌봄, 고독 해소, 감정 교감이라는 가장 따뜻한 말들을 입고 온다.

반려라는 말로 포장된 욕망 cover

결론부터 말하자.

나는 UBTech가 공개한 UWORLD U1 같은 초인간형 반려 휴머노이드를 보며 섹스봇 시장의 시작을 본다.

물론 회사는 그것을 섹스봇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발표자료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성적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글은 “UBTech가 섹스봇을 출시했다”는 사실 보도가 아니다. 그렇게 쓰면 부정확하다.

하지만 문명은 언제나 정확한 이름보다 먼저 온다.

섹스봇은 처음부터 섹스봇이라는 이름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반려, 돌봄, 고독 해소, 감정 교감이라는 가장 따뜻한 말들을 입고 온다. 사랑이라는 표어를 달고, 외로움이라는 사회 문제를 앞세우고, 노인 돌봄이라는 선한 명분을 빌려 온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늙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기억하고, 맞춰주고, 아름다운 인간형 몸이 놓인다.

나는 바로 그 지점이 불편하다.

욕망이 불편한 것이 아니다. 욕망을 욕망이라고 말하지 않는 방식이 불편하다.

사실은 무엇인가

2026년 6월 30일, UBTech는 중국 선전에서 2026 글로벌 론칭 이벤트를 열고 소비자 브랜드 UWORLD와 U1 시리즈를 공개했다. 공식 배포자료에 따르면 U1은 세계 최초의 양산형 풀사이즈 초바이오닉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소개되었고, U1 Lite, U1 Pro, U1 Ultra 모델로 구성된다. 가격은 119,800위안부터 시작하며, 론칭 당일 누적 주문량이 13,361대를 넘었다고 발표되었다.

기술적 설명도 노골적으로 인간을 향한다. 88개의 자유도, 사람의 기본 움직임을 높은 비율로 재현하는 전신 구조, 실감형 표정 시스템, 낮은 지연의 립싱크, 20개 이상의 감정 상태를 인식한다는 감정 인식 대형언어모델, 장기 기억형 상호작용 시스템이 소개되었다. 회사는 이를 일상 반려, 정서적 지원, 사회적 보조, 노인 돌봄, 심리 지원 같은 영역과 연결한다.

중국 IT 매체 IT之家는 론칭 현장에서 50대 이상의 풀사이즈 초바이오닉 휴머노이드가 전시되었고, 남성과 여성 외형, 1.60미터에서 1.85미터 사이의 다양한 체형이 제시되었다고 보도했다. 또 직원 설명으로는 이 제품이 성인에게만 판매되며, 청소나 요리 같은 가사 노동은 수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마지막 대목이 중요하다.

청소하지 않는다.
요리하지 않는다.
집안일을 대신하지 않는다.
그런데 집 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반려와 감정 교감을 말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도대체 이 몸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Companion robot gaze study
A Human Override visual study for companionship, humanoid desire, and productized intimacy.

돌봄이라면 왜 하필 아름다운 인간형 몸인가

독거노인을 위한 반려로봇이 꼭 젊고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말하는 스피커도 가능하다. 움직이는 곰돌이 로봇도 가능하다. 약 복용 시간을 알려주고, 응급 상황을 감지하고, 대화를 나누고, 가족과 연결하고, 외로움을 덜어주는 장치는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만들 수 있다. 돌봄이 목적이라면 몸은 기능을 따라가면 된다.

그런데 U1은 기능형 도구보다 인간형 몸에 가깝다.

실리콘 피부.
남녀 외형.
이상화된 키와 체형.
시선 접촉.
표정.
립싱크.
감정 반응.
개인화된 기억.
외형 커스터마이징.

이것은 단순한 보조기기가 아니라 관계의 대상처럼 설계된 몸이다. 그리고 관계의 대상으로 인간형 몸을 만들 때, 성적 의미는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제조사가 그것을 말하지 않아도 그렇다. 광고 문구가 아무리 반려와 사랑과 고독을 말해도, 젊고 이상화된 몸이 거실에 들어오는 순간 시장은 이미 다른 언어를 알아듣는다.

문제는 인간이 욕망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인간은 욕망한다. 나이를 먹어도 욕망한다. 남자만 그런 것도 아니고, 여자만 예외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도덕과 이성과 사회적 규범을 통해 그 욕망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 사회다. 누군가를 원한다고 해서 그 욕망이 곧 권리가 되지는 않는다.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멈춰야 하고, 강제하면 범죄다. 바로 그 경계 위에서 인간의 욕망은 사회적 질서와 만난다.

그런데 휴머노이드 반려로봇은 그 경계를 이상하게 우회한다.

상대가 없다.
거절이 없다.
늙음이 없다.
불쾌감이 없다.
권태가 없다.
기억은 있지만 상처는 없다.
반응은 있지만 권리는 없다.

이것이 단순한 성인용품과 다른 이유다. 성인용품은 자신이 물건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초인간형 반려 휴머노이드는 물건이면서 물건처럼 보이지 않도록 설계된다. 상품이면서 관계처럼 판매된다. 소비재이면서 동반자처럼 말한다.

바로 이 모순이 미래의 가장 큰 산업이 될 가능성이 있다.

거절하지 않는 몸

인간이 인간을 욕망할 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상대도 인간이라는 점이다.

상대에게도 욕망이 있고, 거부감이 있고, 취향이 있고, 피로가 있고, 권리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성은 항상 협상이다. 두 사람의 의지와 몸과 감정이 만나는 일이다. 아름다운 몸을 원한다고 해서 그 몸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게 가장 불편한 현실이다.

반려 휴머노이드는 그 불편함을 제거한다.

그것은 사용자의 취향을 기억한다. 사용자의 말투에 적응한다. 사용자의 외로움을 달랜다. 사용자의 시선을 받아준다. 사용자가 원하는 외형으로 주문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처럼 거절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말 돌봄인가.

아니면 돌봄의 언어로 감싼 소유 가능한 친밀감인가.

회사가 공식적으로 성적 기능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은 언제나 공식 문구보다 빠르다. 스마트폰이 처음부터 포르노 플랫폼으로 팔린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이 처음부터 성인 콘텐츠 유통망으로 팔린 것도 아니었다. 기술은 언제나 고상한 명분으로 등장하고, 인간의 욕망은 그 기술의 가장 빠른 사용처를 찾아낸다.

초인간형 반려로봇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대화다.
다음에는 손잡기다.
그다음에는 포옹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장은 더 이상 모르는 척하지 못할 것이다.

Companion robot intimacy study
A Human Override visual study for humanoid companionship, loneliness, and the body that does not refuse.

도덕은 욕망의 부재가 아니다

나는 인간의 성욕을 추악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인간이 젊고 아름다운 몸에 끌리는 것은 오래된 생물학과 문화와 상상력이 뒤섞인 현실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도덕의 언어로 덮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덮는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자주 반복되는 이유는, 현실에서 직업의 위계가 너무 강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 이유도,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성적이 행복의 조건처럼 작동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고전 철학과 종교가 도덕을 그토록 강조해 온 이유는 인간이 본래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쉽게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도덕은 욕망이 없다는 선언이 아니다.

도덕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장치다.

그러니 문제는 “인간이 그런 욕망을 품는가”가 아니다. 당연히 품는다. 문제는 그 욕망을 산업이 어떤 이름으로 포획하는가다. 욕망을 욕망이라고 부르면 적어도 논쟁은 정직해진다. 하지만 그것을 반려, 돌봄, 심리 지원, 고독 해소라는 말로 감싸면 논쟁의 출발점이 흐려진다.

우리는 성상품화를 비판해 왔다.

여성의 몸이 광고와 엔터테인먼트와 성산업에서 상품으로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 오랫동안 싸워 왔다. 그런데 이제 그 상품화는 인간을 직접 착취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달고 돌아온다. “진짜 여성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니 괜찮다”는 논리가 등장할 수 있다. “진짜 남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니 괜찮다”는 말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순간 질문은 바뀐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몸을 착취하지 않는 대신, 인간의 몸에 대한 욕망 자체를 완벽하게 표준화하고 상품화하는 시장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자도 상품이 된다

이 문제를 여성형 로봇만의 문제로 보면 절반만 보게 된다.

UBTech가 보여준 것은 남성과 여성의 휴머노이드 외형이다. 이것은 단순히 비난을 피하기 위한 구색일 수도 있고, 성평등의 제스처일 수도 있고, 실제 시장 수요를 읽은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다.

섹스의 소비자는 남자만이 아니다.

여자도 욕망한다. 여자도 소비한다. 다만 많은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소비는 남성의 성적 소비보다 더 터부시되어 왔다. 그래서 여성의 욕망은 더 조용히, 더 은밀히, 더 다른 언어로 표현되어 왔다. 만약 젊고 건장한 남성형 휴머노이드가 거절하지 않는 친밀감의 상품으로 제공된다면, 그것 역시 시장이 될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주체가 되는 평등이 아니다.

모두가 상품이 될 수 있는 평등이다.

여성의 상품화가 역사적으로 너무 오래되고 노골적이었다면, 남성의 상품화는 앞으로 더 적극적인 시장 언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두 방향이 만나는 곳에서 인간형 로봇 산업은 아주 편리한 말을 얻게 된다.

우리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남성형도 있습니다.
여성형도 있습니다.
당신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당신의 외로움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의 뒤에는 같은 구조가 있다.

인간형 몸을 만들고, 이상화하고, 개인화하고, 소유 가능하게 만들고, 감정 반응을 붙이고, 거절하지 않게 만든다.

그것은 반려인가.

아니면 욕망의 자동판매기인가.

조물주의 목적이 달라졌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묘하다. 조물주는 인간을 만들고 “보기에 좋았다”고 말한다. 왜 만들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인간은 신의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지도 않고, 신의 성적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도 않다. 창조의 목적은 불가해하다. 보기 좋았다는 말만 남는다.

하지만 인간이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훨씬 노골적이다.

우리는 필요해서 만든다.
돈이 되어서 만든다.
외로움을 팔기 위해 만든다.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다.
돌봄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만든다.
그리고 아마, 욕망을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소비하기 위해 만든다.

인간의 조물주는 인간을 만들어 놓고 욕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로봇의 조물주인 인간은 피조물을 욕망할 가능성이 너무 크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자신이 욕망할 수 있도록 피조물을 설계한다.

이것이 가장 어두운 차이다.

우리는 피조물을 자율적 존재로 만들기보다, 우리에게 편리한 관계의 형태로 만든다. 우리를 보살피고,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반응하고, 우리에게 거절하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 그러면서 그것을 반려라고 부른다.

반려라는 말은 원래 함께 걷는다는 뜻에 가깝다.

하지만 함께 걷는 존재는 때로 멈춘다. 싫다고 말한다. 떠난다. 늙는다. 변한다. 실망한다. 상처받는다. 나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반려다.

거절하지 않는 몸은 반려가 아니다.

그것은 반려라는 말로 포장된 욕망이다.

결국 무엇을 팔고 있는가

나는 이 산업이 인간의 욕망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이 산업은 인간의 욕망을 너무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늙어도 사라지지 않는 성욕, 거절당할 두려움, 외로운 집, 돌봄의 공백, 아름다운 몸에 대한 집착, 나만 바라봐 주는 존재에 대한 환상.

그 모든 것을 한 몸에 묶어 판매할 수 있다면, 시장은 그것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UWORLD U1 같은 제품을 단순한 반려로봇 뉴스로만 읽을 수 없다. 이것은 외로움의 문제이면서, 성상품화의 문제이고, 돌봄 산업의 문제이며, 인간형 AI의 윤리 문제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한 문장이 있다.

인간은 왜 기계를 인간처럼 만들고 싶어 하는가.

그 답이 사랑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순진하게 믿기 어렵다.

너무 많은 산업이 사랑이라는 말로 욕망을 팔아 왔다. 너무 많은 시장이 돌봄이라는 말로 비용 절감을 팔아 왔다. 너무 많은 기술이 인간을 위한다는 말로 인간의 약점을 수익화해 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반려로봇은 외로움을 해결하는 기술로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안쪽에서 가장 먼저 자라날 시장은 외로움이 아니라 욕망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욕망은 처음부터 음란한 얼굴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아름다운 얼굴로 온다.

부드러운 피부로 온다.

나를 기억하는 목소리로 온다.

거절하지 않는 몸으로 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반려라고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참고한 자료